공부 열심히 안 하는 학생 시절에 대한 회상: 나를 노력하게 만드는 주제는 뭘까?

나는 학생 시절, 수업시간 외에는 교과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
나에게 별 가치 없이 느껴지는 지식들을 외우고, 그에 대한 시험 점수를 받는 것에 의미를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머리가 좋은 편이라(?) 수업시간에 깨어있기만 해도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편이었기에, 공부를 안 한다고 별다른 문제가 생기진 않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입시 준비를 해야 했다. 나는 어차피 미대를 갈 예정이라 상대적으로 성적 스트레스는 덜했으나, 어느날 이렇게 펑펑 놀아도 되나 걱정이 되어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저는 하는 거에 비해 성적은 잘 나오는데 노력을 너무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공부 하기가 너무 싫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때 선생님의 대답을 평생 잊을 수 없다.

”네가 노력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공부를 너만의 방법으로 하는거야. 네가 공부하는 방법이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을 필요는 없잖아? 너는 너만의 방법으로 열심히 하고 있는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 때 선생님의 말씀이 이제 와서 이해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교과서를 받는 날 국어 읽기 교과서에 수록된 글들을 다 읽어버리는 습관이 있었는데(이 습관은 고3때까지 쭉 이어졌다.) 재미있는 글이 있으면 도서관에서 그 내용이 수록된 책을 빌려다 읽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이청준의 ‘소문의 벽’으로, 고등학생 때 한동안 이청준 작품에 푹 빠져 살았다.)

막상 국어 수업은 지루했다. 수업시간에는 책을 읽는 척 하며 공상의 나래를 펼쳤다. 맞춤법 수업은 약간 더 재미있었다. 한국어 맞춤법은 예외 규칙이 많아서 아주 복잡한데, 나는 예외들 사이에서의 접점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곤 했다.

‘사잇소리 규칙’이 아직 기억난다. 맞춤법 수행평가를 하던 중 내가 보기에 복수 정답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는데, 내가 쓴 답은 오답이 되었다.
복수 정답을 인정해달라고 주장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너무 억울해서 선생님의 채점 기준에 항의하기 위해 논문을 잔뜩 뒤졌다. 아무리 봐도 내가 맞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를 귀찮아했고 나는 선생님이 무서웠기 때문에, 결국 흐지부지되었다.

고등학생 때, 윤리 선생님은 자는 학생을 깨우지 않는 분이었다. 인천에 있던 우리 학교는 면학 분위기가 없는 편이라, 수업 시간에 깨어 있는 사람은 두세명 정도였다. 그래서 선생님과 많은 질문을 나눌 수 있었다.

선생님은 고작 18년 살아온 나의 생각들을 아주 진지하게 듣고, 늘 적합한 답을 주셨다. 아주 감사한 분이었다. 덕분에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천 중앙도서관이 집에서 10분 거리라 자주 가곤 했는데,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꽂혀서 한동안 직역서를 빌려다 엄청 읽어댔다.

이렇듯,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상당히 열심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 교과 과정은 다양한 지식에 대한 찍먹 큐레이션이었다. 당연히 다 좋아할 수 없었겠지...

요즘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지금의 나에게는 무엇이 ‘소문의 벽’이고, ‘사잇소리 규칙’이며, ‘소크라테스의 변론‘일까? 내가 지독하게 꽂혀서 아주 신나서 스스로 파고드는 주제들은 뭘까?

일단 많은 종류의 일들을 해보고 가지치기를 하고 있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은 끊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고 있을까?
케이스가 궁금하기도 하고, 방법도 궁금하다. 지구상에 있는 사람 수만큼 그 방법이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