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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시간을 싫어하는 아이
운동을 못 하는 아이.
경찰과 도둑 같은 술래잡기 놀이,
체육 시간에 하는 피구나 달리기,
체력장이나 체육대회 등….한창 성장기의 초등학생이라면 으레 좋아하는 것들이지만,
위 목록은 학창 시절에 내가 제일 싫어하던 것들이다.
나는 체육을 싫어하는 아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 못해서 그랬던 것 같다. 못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고, 늘 하기 싫었다.
체육 시간이 싫은 나머지, 어떻게든 빠지려고 몸부림을 치곤 했다. 오늘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교실에서 쉬거나, 최대한 덜 움직이고 그늘로 잽싸게 달려간다거나. 나는 늘 운동을 못 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운동을 못 하는 아이는 자연스레 운동을 못 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운동을 잘하는 어른.
작년 봄, 심심해서 동네 모임을 구경하다가 당시 유행하던 러닝 크루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괜찮을까? 나는 평생 운동을 안 했는데!
하지만 호기심이 걱정을 이겼다. 운동화를 신고 모임에 처음 나간 날, 러닝 고인물(?)의 도움으로 1km를 간신히 달렸다. 처음 뛰는 사람치고는 잘했다고 칭찬받았다. 다음 모임에는 2km를 뛰었고, 이후 0.2km씩 늘여서 금세 3km를 뛰게 되었다. 내가 생각보다 잘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뭐야, 나 운동 못하는 거 아니었어?
못하는 게 아니었다. 안 하는 거였다.
돌이켜보면 학교에 가기 전, 더 어릴 때는 나도 운동을 싫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 입학하고 체육 성적이 나오면서 '못한다'라는 감각이 나에게 운동을 싫어하게 했다. 만일 그때, 비교 대신 성장을 택했다면 나도 체육을 좋아하는 아이가 되지 않았을까?
못 하는 아이를 위해.
아이는 모든 것에 초심자이며, 새로운 것을 익히는 처지에서는 나의 상대적인 위치가 아니라 정량적인 성장에 주목해야 한다. 남들이 5km 뛸 때 2km를 뛰니까 난 못한다고 포기하지 않고, 내가 어제는 1.8km를 뛰었는데 오늘은 2km를 뛰었으니 더 늘었다는 것에 집중했듯이 말이다.
예를 들어, 수학 점수가 20점이면 아이는 낙담하기 일쑤다. 나는 수학을 못 하나 봐, 라며 말이다. 이때 부모는 옆집 아이와 비교하며 공부를 더 하라고 다그치는 대신, 아이의 발전 그래프를 봐야 한다.
"봐, 예전보다 요즘은 더 잘하고 있잖아. 지금까지의 점수를 보면, 오락가락하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올라가는 추세인 것이 보이니? 아마 숙제를 꼬박꼬박해서 그럴걸?"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비교를 통한 투쟁심이 아니라, 행동을 통한 원인과 결과다.
먼저 아이에게 내가 하면 잘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아주 작은 시도라도 칭찬하고, 더 큰 도전을 할 수 있도록 크게 응원해야 한다. 피드백은 가장 확실한 동기부여 수단이다.
다음으로 그런 경험을 실제로 맛봐야 한다. 머리로 알아도, 진심으로 믿기 위해서는 경험을 통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아이의 성장 기회를 많이 설계하고, 자기 행동에 따른 성장 결과를 보상으로 받게 해야 한다.
성장기는 재능이 아직 형성되는 단계다. 자기 행동을 통해 못하던 것을 잘하는 것으로 바꾸는 경험이 생긴다면, 아이는 앞으로 무엇이든 잘할 것이다.
운동을 안 하던 아이에게.
초등학생 시절의 나를 만난다면, 이런 말을 전해주고 싶다.
"지금은 못 하고 부끄럽지만, 스스로 기준을 갖고 연습하다 보면 분명 잘하게 될걸? 그러면 좀 더 많은 것들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될 거야."
세상의 모든 아이가 더 건강하고 자신감 있게 자라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